2019/12/02 13:15

뒤늦은 기생충 감상 후기(스포가 넘실거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이제서야 보았다.

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란 얼마나 매력적인지
봉준호 감독님은 지하철도 자주 타신다던데
만나면 꼭 인사라도 해보고 싶다.
아는척하면 싫어하시려나.


글재주가 없어서 큰 흐름을 그리며 감상평을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영화라서 이것저것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감상들을 최대한 나열해 볼 뿐이다.


먼저.
내가 전체적으로 느끼기에는
감독은 부자나 빈자 어느 쪽에도 치우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독하고 있다고도 이야기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굳이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변하려 애쓰지 않았다는 점.?
전체적으로 감독은 가치판단을 철저히 배제하고 현상에 극적인 장치만 더하여 극대화해 보여주었다는 느낌이다.
아, 또 한가지, 제목에서 모독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보아도 극중에서 기생충을 연상할 만 하지만 제목으로 확인사살하는 느낌..? 하지만 이 역시 극적인 요소이지, 어떤 선언적 의미의 제목은 아닌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늘 굉장히 한국적이라고 느껴진다. 기생충 역시 그러한데
이게 유럽에서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 참 흥미롭고, 과연 우리가 느끼는 감상과 어떤 지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지점에서 다른지 굉장히 궁금해진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선명해지는 인물은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동익이다.
이 영화속에서 가장 흥미롭고 복잡한 인물이라고 느껴진다.
현실세계에 대입해 본다면 상류층 기득권의 전형적인 모습일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될 수 있는 인물이다. 계급이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동익은 굉장히 예민하다. '선을 넘는 것'에 대해서 그렇다. 그 '선'이라는게 어떤건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단순한 예의에 대한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동익이 불쾌해하는 순간은 동익과 기택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동익은 그 순간 굉장히 불쾌해한다. 나이스하고 젠틀한 사람이지만, 감히 기택이 그를 친구로서 대하려는 순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기택이 그에게 길게 조언할 때는 흘려 듣는다. 기택의 이야기를 길게 들어줄 여력도 열의도 없다.
'냄새'라는 소재는 굉장히 자극적이지만, 나는 동익이 기택에게 그렇게 선을 긋는 순간들이 가장 모욕적이라고 느꼈다. '냄새'는 그것에 불을 당길 뿐이었다.

예전에 남편과 코스트코에 갔었다.
주차를 하면서 차를 앞으로 잠시 빼려는데 어느 노부부가 우리 차 앞으로 지나가려다가 멈췄다.
우리는 부부가 멈춘 사이에 다시 차를 앞으로 움직였다.
부부는 우리가 기다려줄 줄 알았는지 지나가려다가, 우리 차가 움직이자 다시 멈춰섰는데 그때 우리쪽을 쳐다보던 그 할아버지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눈으로 말을 한다는게 그런 것일까. 살기라는게 그런 것일까.
언뜻 보기에도 부유해보이던 그 할아버지의 눈빛은 '니깟것들이 멈춰서지 않고 어디서...!' 하고 말하는 것 같았고 조금 더 선을 넘으면 청부살인이라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때의 기억은 정말 말한마디 섞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평생 잊혀지지가 않을 것 같다.
그때 생각했었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나이들어 마음속에 저렇게 서늘한 칼날만이 남았을까.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을 시켜 살인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다.


연교는 말그대로 공주님이다.
현대판 마리 앙뜨와네트랄까; 아마도 극중에 직접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큰 고생 모르고 자랐을 것이 눈에 훤하다.
구김살 없고 사랑스럽지만 치명적인 약점은 겁이 많다는 것이다.
고생 모르고 살았을 것 같지만 아마도 가진자의 삶이란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돈이 모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욕망들이 따라붙는 것 같다.
그런 욕망들을 겪으며 예민하고 겁이 많아지지 않았을까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상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동선은 크게 겹치지 않아 가까이 마주할 일이 별로 없으나 영화속에서는 이들이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놓이게 된다.
내가 느끼기에, 이들은 서로 직접 대면했을 때 나름대로 예의를 지키지만
이들 사이에 갈등이 촉발되고 민감해지는 지점은 각자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의도하지 않은, 무신경한 행동들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악의는 없었으나 무례한, 상처되는, 하지만 탓할 수 없는 그런 것들?
그런 상처와 분노는 쌓여있다가 아래를 향하나보다.
기택의 가족과 문광, 근세는 하층민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우리네를 보는 것만 같아 너무나 서글퍼졌다.
서로 힘든 처지의 사람들끼리 다투는 모습.
살기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죄의식을 잃어버렸고 누가 갑이랄 것도 없는데 서로 갑질을 하다가 공멸하는 모습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분노와 보호본능이, 향해야 할 곳이 아니라 향하기 쉬운 곳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결국 근세가 칼을 들고 계단을 올라와 정원에서 벌이는 일은 마치 묻지마 살인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극중에서 근세는 목표가 명확했으나 내게는 굉장히 상징적으로 보였다.
최하층민의 분노가 갈곳을 잃고 일견 아무 죄 없어 보이는 누군가에게 향하는 비극 말이다.
하지만 아래로 향하던 분노는 기택에게 이르러 수직상승한다.
기택은 동익에게 자신의 분노를 터뜨린다. 그 결과로 기택은 지하로 숨어들게된다. 


영화 속에서 '계획'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그에 대한 감독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택의 대사는 굉장히 직접적이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 절대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이 대사는 어찌보면 필연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무계획적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기택의 삶이 항상 계획이 실패하는 일의 연속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에 무기력해진 한 인간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마음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동익과 연교의 가정 역시 절대 계획하지 않았던 비극을 맞았다는 것이다.
가진자의 삶이나 못가진자의 삶이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기우는 아버지의 메세지를 받은 후에 결심을 한다.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살 것이고, 아버지는 계단을 올라오기만 하라는 그 말이
너무나 상징적이며 동시에 노골적이고 한국적으로 느껴졌다.
돈 많이 벌어 부모님 신분상승 시켜주겠다는 그 착하고 대견한 마음이. 대책없고 절망스럽다. 돌고 돌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그런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 별명이 봉테일이라며 유독 작품마다 이런저런 디테일에 대한 상징과 해석들을 궁금해하는데
어떤 것들은 의미가 다가오기도 하고 아리송한 것들도 있지만
디테일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단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줄 뿐이고 영화 자체의 메세지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송이가 모스부호 메세지에 아무런 액션을 보이지 않은 것, 기우가 선물받은 수석이 상징하는 바 등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어쨌거나 정말 잘 만들어진, 흥미롭고 천재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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